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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0월 만 31세 나이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오늘은 대학병원 초진과 검사부터 입원 전 이야기에 대해서 해볼려고 한다.

 

 

유방암 대학병원
대학병원에 가다

 

 대학병원에 가다

 

유방암 진단 받고 바로 다음날 대학병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남편이랑 아침부터 1시간을 달려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각종 서류를 등록하고 유방외과로 갔다. 진료대기실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내 또래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방이라 20대, 30대의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서울로 가나보다.

 

 

 

예약시간이 한참 지나 내 차례가 되어 드디어 교수님을 만날 뵐 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은 나의 기록지들을 보시더니 베드에 누우라고 했다. 손으로 촉진을 하셨다.

 

 

 

왼쪽 오른쪽을 다 만져보시곤 겨드랑이에 있는 암 위치까지 바로 찾아내셨다.(조직 검사를 한 병원에서는 가슴쪽만 했고, 겨드랑이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았으니 꼭 대학병원가서 조직검사를 받아야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나랑 남편은 아무리 만져도 겨드랑이 혹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딱딱하다"고 혼자 말씀을 하시더니 내게는 아무 말없이 겨드랑이 소독을 하셨다.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사기로 혹을 찔러 빼내셨다. 가슴 검사할 때보다는 안 아팠는데 말없이 바늘을 찔러서 매우 놀랐다. 세침검사 하신다고 미리 말씀좀 해주시지 ㅠㅠ

 

 

 

 

 

 

 

 

교수님께 나는 몇 기 냐고 질문을 드렸다. 교수님은 1기 아니면 2기라고 하셨고, 2기라면 항암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항암을 하면 임신은 못하는 거냐고 묻는데 제대로 발음을 못했는지 교수님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시면서 내 우는 모습에 매우 당황하셨었다. 간호사님은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시고, 남편은 내가 한 말을 교수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항암을 하게 되면 배아동결을 하라면서, 여기 병원은 배아동결을 안 하니 다른 병원을 연결해 줄 테니 가보라고 하셨다. 수술은 당장 6일 뒤에 할 수 있다고 나가서 예약하고 가라고 하셨다.

 

 

 

나는 경황이 없어서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유방 쪽 병력이 없었으니까 내가 이 나이에 암일리 없으니까 분명히 오진일 거라 생각하고 대학병원 오면 다를 줄 알았지만, 확신의 암이었다. 거기다 항암까지도 할 수 있다니... 결혼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나의 미래는 신혼을 즐기고 아이를 갖고 직장 생활도 해내는 멋진 엄마의 모습, 남편과 노년까지 행복하게 늙어가는 거였다. 이렇게 소박한 꿈이 당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너무 절망스러웠다.

 

 

 

진료실을 나와서도 펑펑 우는 내게 간호사님은 달래주러 나오셨다. 진료대기실에 사람들이 꽉 찰 정도로 많았지만 나는 그냥 꺼이꺼이 흐느끼면서 울었다. 그렇게 눈에 뵈는 거 없이 울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나 때문에 조용한 건지, 그냥 들리지 않았던 건지는 몰랐지만, 세상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할까.

 

 

 

간호사님이 불러서 예약을 정하는데 당장 6일 후 수술이지만, 5일 뒤에 입원이고, 내일과 모레는 검사를 하러 와야한다고 한다. 성형외과도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혹시나 전절제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하루도 제대로 출근을 못하는 거였다. 내 자리도 정리하고, 내가 해야할 것들도 정리를 해야하는데 말이다.

 

 

 

당장 5일 뒤 입원과 수술은 급작스러웠다. 아직 엄마에게도, 회사에도 말할지 못했는데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간호사님께 얼마만큼 미룰 수 있냐니까 최대 미룰 수 있는 날은 얼마 없다고 5일에서 9일까지 미룰 수 있다고 하셨다.

 

 

 

28일 수술 일정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25일은 성형외과, 26일은 mri, ct, 뼈스캔 검사 일정이 잡혔다. 그러고 중증등록을 하고 가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세법상 5년 장애인이 되었다.

 

 

 

 

검사부터 입원 전 이야기

 

원래는 10월 24일에 입원하고 25일에 수술하는 일정이었으니까 겨드랑이 세침검사 결과가 24일에는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화로 유방외과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전화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전이가 있을까 봐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유방암이야기 카페를 통해 알아보니 조직검사결과지를 떼보면 미리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 성형외과 진료가 있으니 병원에 방문한 김에 조직검사결과지를 떼기로 했다.

 

 

다음날 병원에 도착해서 성형외과 가기 전에 조직검사결과지부터 뗐다. 결과지를 보는데 호르몬 양성, 허투음성이었고, 핵등급은 2등급, ki지수가 17%였다. (유방암 수술 후 핵등급은 3등급, ki지수는 42%로 변경됐었다.) 세침검사 결과는 전이가 확인되었다. 절망적이었다. '제발 1 기여라' 했는데 최소 2기가 확정이었다.

 

 

 

원래는 11월 8일에 아산 병원을 예약해 뒀지만 전이가 확인된 지금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수술 전에도 핵등급이나 ki지수가 낮은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또, 지금도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 여기서 수술하고 퇴원하고도 남는 시간에 아산은 첫 진료를 받게 되다니 언제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지방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수술 흉터가 크기에 그때 아산병원을 하게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 든다. 이때는 생명의 위협이 컸으니 미용목적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이것도 지금 건강해서 나오는 소리겠지.

 

 

 

성형외과 교수님을 만났다. 보형물과 복부 복원이 있는데 보형물을 넣는 걸 추천하셨다. 복부를 하게 되면 대수술에 흉터가 두 군데나 남고, 살도 빠져서 없기에 보형물을 하기로 했다. 보형물은 반대편 크기와 맞지 않는다면 작게 할지, 크게 할지를 선택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이왕이면 큰 게 좋다고 큰 걸 넣어달라고 했다. 기왕이면 양쪽 다 해서 C컵 만들면 안 되냐니까 굳이 오른쪽은 수술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셔서 알겠다고 했다. 아쉬웠다.

 

 

 

 

 

 

다음 날, 검사를 위해 또 병원을 방문했다. 우선 뼈스캔을 찾아갔다. 바늘을 꽂고 주사 약물을 주입하는데 3시간 이후에 와서 촬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CT검사도 예약이 되어 있어 바늘을 꽂은 채 CT실로 갔다. CT도 약물을 주입하고 CT검사를 했다. CT는 약물 부작용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검사는 간단하게 안내 멘트에 따라 숨을 쉬었다가 참았다가 하면 되었다. 바늘은 뼈스캔하는데서 뽑아야 한대서 바로 뼈스캔 한 곳으로 가 바늘을 뺐다. 왜 CT실에서 안 뽑아주는지 의문이다.

 

 

 

다음은 MRI촬영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갑자기 유방초음파를 받으라고 유방외과에서 연락이 왔다. 유방초음파를 보러 갔는데 초음파 사진을 많이 캡처하시길래 혹이 많냐고 물었지만, 그건 교수님께서 판단하시는 거라 교수님 만나서 물어보라고 하셨다. 불안했다. 유방엑스레이촬영도 했다. 조정석이 소리 지르는 짤을 봤었는데 딱 그렇게 된다. 조직검사를 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왼쪽이 좀 더 아팠다.

 

 

 

MRI 촬영실로 갔는데 유방초음파를 하느라 늦어 급하게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귀마개랑 헤드셋을 해주셨지만 제대로 착용이 안된 느낌이었다. 쿵쾅쿵쾅 소리와 KF94 마스크 때문에 엎드린 채 숨쉬기가 힘들었다. 공황장애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힘들면 누르라던 버튼을 누를까 말까 백번을 넘게 생각하다가 참고 참았다.

 

 

 

20분이 끝나자 움직여서 재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절망적이었다. 왜 내가 암에 걸려서 이런걸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검사였다. 정말 이 악물고 버텨서 두 번째는 오케이를 받았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마지막으로 뼈스캔을 하러 갔다. 그냥 누워 있으면 되는 검사였는데 너무 따뜻해서 한숨 푹 자다가 기계가 멈추길래 잠에서 깼다. 검사하는데 하루 종일을 다 썼다. 너무 피곤한 느낌이라 바로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입원이었기에 얼른 가서 캐리어에 짐을 쌌다. 드디어 내일 입원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수술하기까지 매우 짧은 기간이지만 내게는 매우 길게만 느껴졌던 수술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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